외국인 가사관리사 이대로면 실패

2024-10-07     김정식 터닝포인트 대표
김정식

서울시가 시행 중인 ‘필리핀 가사 관리사 시범사업’은 국내 가사노동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리핀에서 가사관리사를 초청해 고용하는 시범사업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과도한 급여나 문화적 차이, 심지어 연락 두절 후 이탈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는 등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필리핀 가사 관리사를 고용할 경우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 시 월 238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같은 조건으로 홍콩은 월 77만 원, 싱가포르는 40만~60만 원 선이다. 한국의 임금이 유독 높은 이유는 높은 최저임금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해도 홍콩 시급(2797원) 대비 3.5배, 싱가포르(1721원)와 비교하면 5.7배 수준이다. 이에 더해 4대 보험 등 근로관계법까지 모두 적용하게 되면서 이들의 실질 시급은 1만4000원에 달하는데, 이는 공공 아이돌보미가 받는 1만1630원보다 많다.

우리나라 3인 가구 중위소득이 471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소득 절반을 필리핀 가사 관리사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과 달리 홍콩은 외국인 가사 도우미에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았다. 최저 임금제가 없는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 가사 도우미의 최저 시급을 8개 파견국과 협의해 정한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페이스북에 "외국인에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대부분의 중·저소득층에게 그림의 떡이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역시 국회 세미나를 개최,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역·직종·능력별 최저임금에 차이를 두자는 의견이 확산하는데, 이들은 내국인 가사 관리사에 비해 업무도 제한적으로 수행한다. 규정에 따르면 6시간 이상 서비스의 경우 옷 세탁·건조, 설거지·청소기·마대 걸레 등은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만 쓰레기 배출·음식 조리·손 걸레질·수납 정리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듯 업무도 제한적인데다 비싼 이들을 고용하는 것은 주로 강남인 것으로 나타난다. 강남권 부모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맘카페에는 ‘필리핀 도우미가 자녀 영어 교육에 도움이 될지’를 묻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맞벌이 가정의 가사·돌봄 부담을 덜겠다고 도입한 최초 의도와 달리, 결국 부유한 강남 엄마들의 새로운 영어 교육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보다는, 통금과 인원 확인 절차를 완화하는 등 가사 관리인들의 편의를 확대하는 방침부터 내놓고 있다. 많은 부분을 원점에 놓고 수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 문제를 ‘돌봄·육아’의 관점이 아닌 ‘노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시범사업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