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由칼럼] 이승만과 장제스, 건국 아버지들의 씁쓸함

2024-08-20     이충형 중국학 박사
이충형

대만 중정(中正)기념당은 101빌딩, 국립고궁박물원과 더불어 타이베이의 랜드마크다. 육군본부·헌병사령부가 자리하던 타이베이시 중정구 중산남(中山南)로에 1976년 착공해 1980년 완공돼 대중에게 개방했다. 본당(hall) 건물 높이는 70m에 달한다. 육·해·공군 의장대가 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는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8회에 걸쳐 교대식을 벌인다. 중정기념당 의장병과 교대식은 타이베이의 관광 명물 중 하나다.

기념당 광장에서 본당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89개다. 89세로 타계한 한 인물을 상징한다. 착공 한 해 전 사망한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이다. 중정(中正)은 장제스의 본명이다. 의장대가 보초를 서는 위치는 본당의 장제스 좌상 주변이다. 이 의장대가 철수한다고 로이터 통신과 대만 매체들이 보도했다.

지난 12일 대만 행정원 문화부는 성명서를 통해 "중정기념당 홀 내 의식을 담당했던 의장대를 15일부터 철수하고 대신 자유광장(自由廣場)으로 옮겨 배치한다"고 발표했다. 문화부는 "개인숭배 철폐, 권위주의 숭배 종식을 현 단계에서 중정기념당의 ‘과도기적 정의’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1945년 대만 광복 이후 2000년 민진당이 집권할 때까지 이어진 ‘국민당 권위주의 체제’를 재정의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추후 중정기념당 폐쇄도 시사했다. 1996년 대만이 총통 직선제를 복원한 이후 사상 첫 3연속 집권에 성공한 민주진보당(민진당) 정부가 ‘과거사 청산’에 본격적으로 나선 조치로 해석된다.

중국국민당(국민당) 통치의 상징과도 같은 ‘장제스 지우기’가 핵심이다. 국민당의 장기 집권 후 2000년 처음 들어선 첫 민진당 정부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장제스를 독재자, 학살자로 규정했다. 구체적 조치로 2007년 중정기념당을 ‘국립대만민주기념관(國立臺灣民主紀念館)’으로 개명하고, 지하 전시 시설을 폐쇄했다. 2006년에는 대만의 관문 중정(中正)국제공항을 소재지 지명을 따서 타오위안(桃園)국제공항으로 바꿨다.

2016년 재집권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은 "장제스는 인권 탄압을 자행한 독재자"라고 결론 내리고 대만 전역의 장제스 동상 934개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철거 작업은 반대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가 지난 5월 출범한 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정부 들어 속도를 내고 있다.

장제스에 대한 평가는 진영에 따라 엇갈린다. 집권 민진당을 위시한 범록(泛綠·pan-green) 진영은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라고 한다. 대만 현대사 최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1947년 2·28 사건에서 약 2만 명의 대만 본토 주민을 학살한 책임을 그에게 묻는다.

반대쪽에선 청나라가 많은 국가들과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장제스가 취소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맞선 장제스 덕분에 중국(중화민국)은 미국·영국과 동맹을 맺어 4대 연합국의 하나로 인정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불평등 조약들을 없앨 수 있었다.

제1야당 국민당을 위시한 범람(泛藍·pan-blue) 진영도 유사한 입장이다. 대만 군부는 장제스가 1924년 대만군의 뿌리인 황포군관학교(현 대만 육군사관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고, 학교가 1950년 대만에서 재개교할 때도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진당 정부의 ‘장제스 지우기’는 논란을 일으켜왔다. 타이베이 국립정치대(國立政治大)에는 중앙도서관인 중정도서관의 장제스 좌상과 학교 후문의 기마상이 있었다. 2000년 민진당 정부 출범 후 동상들은 여러 차례 페인트 세례를 받았고 기마상은 말의 다리가 훼손되기도 했다. 논란 끝에 중앙도서관의 좌상은 2018년 철거됐다. 국립정치대는 1927년 중국에서 개교한 중국국민당 중앙당무학교가 모체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칭하는 걸 문제 삼았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건국 대통령이 아니면 누가 건국 대통령이란 건가. 때마침 터진 장제스 이슈를 보며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