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세계] 국정원 해커, 혹시 北의 블랙요원 자료는?

2024-08-08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범죄학 박사
장석광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포스트가 ‘박정희 지시로 박동선과 중앙정보부 등이 의회 내 친한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의원들과 유관 공직자들에게 매년 5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에 이르는 불법 로비를 했다’고 보도했다.

FBI는 수사에 착수했고, 박동선의 불법 활동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박동선이 버린 쓰레기였다. FBI는 파쇄기로 국수가락처럼 잘린 문서들을 일일이 이어 붙였다.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명불허전, 과연 FBI였다.

FBI는 1974년쯤 박동선의 주거지와 가방에서 이미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증거는 비밀리에 불법으로 수집한 자료였기 때문에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었다. FBI는 합법적으로 입수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렇게 입수된 자료가 쓰레기 증거였다. 소유권을 포기한 쓰레기는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 최초 수사단서가 된 첩보가 적법하게 수집되지 않았거나 출처 공개가 어려울 때 흔히 쓰는 수사기법이다.

2008년 12월, 국내 모 월간지에 ‘국정원의 대(大)특종! 김정일 뇌 사진 입수’ 기사가 실렸다. 어느 지점, 어떤 방식의 해킹이었는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지만, 국정원이 8월 중순 북한에서 프랑스로 전송되는 김정일의 뇌 사진 파일을 해킹,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음을 정확하게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3개월 전, 북한정권 창립 60주년인 9·9절 행사에 김정일이 나타나지 않자 해외 언론에서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수뇌부를 헐뜯고 비방하는 나쁜 여론’으로 몰아가면서, 김정일의 외부 활동사진을 지속적으로 공개했다. 국내에서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에 석연찮은 반응을 보이는 언론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국회도 국정원의 대북 정보수집 역량에 비판을 제기하던 시점이었다.

정보기관은 첩보의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밝히더라도 허위 출처로 위장한다. 출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정치·외교·군사적 파장이 예상되거나 상대의 정보수집 역량에 혼선을 줄 필요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정보기관이라도 민감한 출처를 의도적으로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첩보의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한 경우, 상대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거나 내부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정보기관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보기관이 내부적 문제나 스캔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가 그렇다. 그 어떤 경우라도 공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그 위험을 상회한다고 판단될 때 출처가 공개된다.

정보사령부 군무원 A씨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블랙요원들의 신상정보를 중국인에게 넘겼다. 방첩사령부는 A씨의 북한 연계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국정원에서 활동하는 해커가 북한 내부 네트워크를 해킹하다 정보사 블랙요원들 명단을 찾아낸 것이 수사의 단서였다. 수사권이 없는 국정원은 방첩사에 첩보를 이첩했다. 여기까지 모두가 언론에 공개된 내용들이다. 방첩사의 수사상황이 공개되면서 국정원의 민감 첩보까지 공개됐다.

해킹한 첩보를 수사단서로 직접 활용했고, 해킹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수사의 진행 과정은 시시각각 언론에 보도된다. 과거 대공수사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국정원이나 방첩사가 아마추어가 아닐진대, 공개를 통한 위험보다는 공개를 통한 이점이 더 많다고 판단했을 터. 혹시 국정원의 그 해커가 북한의 대남 블랙요원들 신상정보를 가져오진 않았을까?

만약 대한민국이나 해외 어디에서 잠 못 이루는 분들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자수하길 권한다. 국정원은 여러분들의 신상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상상을 초월하고 오묘한 정보의 세계! 이래서 스파이 세계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