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 테리 기소, 호들갑 대신 차분한 대응을
미국 연방검찰이 한국계 대북 전문가인 미국외교협회(CFR)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을 기소하자 한국에선 마치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이 장난 아니다.
미국을 상대로 한 공공외교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분석이 선두로 나섰다. ‘은밀한 정보의 세계에서 허술한 정보활동’으로 국가정보원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문 정권서 일어난 일’이라는 얘기에, ‘우리도 미국 간첩을 잡아내자’는 감정적 대응까지 더해지고 있다.
1996년 미국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이 미국의 기밀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 백동일 대령에게 넘긴 혐의로 FBI에 체포됐다. 당시 로버트 김에게 적용된 혐의는 간첩죄의 일종인 ‘국방기밀취득음모죄’였다.
그러나 이번에 수미 테리에게 적용된 법조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이다. 외국 정부, 조직 또는 사람을 위해 국내 로비 또는 옹호 활동에 참여하는 개인 또는 단체는 법무부(DOJ)에 등록을 해야 된다는 법이다.
로버트 김이 간첩으로 기소됐던 데 비해 수미 테리가 국정원의 불법 로비스트 혐의로 기소됐다는 것은, 국정원 직원들의 활동이 ‘은밀한 공작 활동’(clandestine operation)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현지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정도의 공개된 정보활동으로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외교관증으로 면세 혜택을 받고, 외교 번호판을 단 차량으로 비밀공작을 할 정도로 국정원 직원이 바보는 아닐 것이다.
FBI는 그동안 여러 차례 수미 테리에게 경고를 보냈다.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과도한 선물을 제공했다.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미국 방첩당국이 의혹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FBI는 자기 직무를 했고, 수미 테리는 미국 실정법을 위반했다. 국정원 직원들도 동맹국이라는 과신으로 안이하게 활동했다. 친할수록 거리를 두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 사실보다 과장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우리 스스로 침소봉대해서 문제를 키워나가선 더욱 안 된다.
우방국끼리도 이런 일은 늘 일어나는 법이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논쟁거리로 삼는 것은 한미동맹에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흙탕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