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廣場] 국립오페라단의 명품 공연 ‘죽음의 도시’

2024-06-26     여진 연극평론가·콘서트기획가
여진

국립오페라단이 야심차게 준비한 ‘국내 초연 오페라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코른골트(E. W. Korngold; 1897~1957)의 ‘죽음의 도시'(Die Tote Stadt)를 관람했다. 성악·오케스트라·합창·연출·연기·움직임·조명·무대까지, 종합예술인 오페라가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이뤄낸 멋진 공연이었다.

오페라의 원작 소설은 벨기에 작가 조르주 로덴바흐의 ‘죽음의 브뤼주’(1892)다. 이를 작곡가의 아버지 율리우스 코른골트가 오페라 대본용으로 각색했고, 1920년에 23살 신예 작곡가 코른골트가 3막의 오페라로 완성했다. 초연부터 대성공을 거둬 작곡가 코른골트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코른골트는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1933년 히틀러의 마수를 피해 서둘러 미국으로 떠났고, 이후 할리우드에서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흐릿한 생애를 마감했다.

이야기 배경은 벨기에의 도시 브뤼주다. 사랑하는 아내 마리와 사별한 주인공 파울은 깊은 상실감과 우울증에 빠져 있다. 그는 집안에 만든 사당에 생전 아내의 옷과 물건 그리고 머리카락을 전시해 놓은 채로 과거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사건은 아내 마리를 꼭 닮은 유랑 극단의 무용수 마리에타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파울은 마리에타로부터 아내 마리를 보게 되고, 마리에타는 이를 이용해 크게 한몫 보려 한다. 마리에타의 유혹은 거세지고 파울은 현실과 꿈 그리고 죽은 마리와 산 마리에타 사이에서 크게 흔들린다. 마리에타가 파울의 집에 전시된 마리의 옷을 입자, 모욕감을 느낀 파울은 그녀를 마리의 머리카락으로 목 졸라 살해한다.

숨진 마리에타가 결국 죽은 아내 마리와 똑같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파울은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친구 프랑크가 나타나 이 모든 사건이 환각이었음을 알려준다. 현실감각을 회복한 파울이 과거와 죽음의 도시인 브뤼주를 떠나며 막을 내린다.

후기 낭만과 현대에 한 발씩 걸치고 있는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유려하고 편안한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을 실제로 구현해야 하는 음악가들에게는 매우 고역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3관 편성의 오케스트라는 어느 파트 할 것 없이 초절 기교를 요구하며, 두 주역 성악가에게는 초인적인 체력과 초월적인 기량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죽음의 도시’는 음반과 영상물로만 감상할 수 있고, 실제 공연으로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귀한 오페라다. 그래서인지 5월 23일부터 4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차려진 ‘죽음의 도시’ 소식을 듣고 많은 오페라 애호가와 음악 평론가들이 몰려들었다.

가장 먼저, 연출 줄리앙 샤바와 무대 미술 감독 아넬리제 노이데커 그리고 조명 감독 엘로이 자니니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셋은 음악과 이야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낭만적이나 우울하고, 아름다우나 무서운 분위기를 단순한 파스텔 톤으로 멋지게 구현해 냈다. 벨기에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세련된 초현실주의 색채가 시각을 사로잡았고, 3막의 괴이한 전례 행렬 장면은 같은 벨기에 화가인 제임스 앙소르의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1889)을 연상케 했다.

지휘자 로타 쾨닉스가 이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음악은 무대미술과 극 중 이야기와 완벽한 공명을 이룬 환상적인 연주였다. 빽빽한 악보 덕에 단원들은 연습 내내 무척 고생했지만, 이를 보란 듯이 극복하고 극상의 합주력과 울림을 선사했다.

파울 역의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마리/마리에타 역의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는 피날레까지 지친 기색 전혀 없는 울림을 토해냈다. 두 주역은 커튼콜 때 쉴 겨를도 없이 엄청난 박수 세례에 화답해야만 했다. 그리고 죽은 마리의 괴이한 동작을 온몸으로 표현한 무용수 김채희는 조연들 중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오페라 장르의 총체 예술적 미학을 온 감각기관으로 만끽한 공연이었다. 2025년에도 국립오페라단의 국내 초연 시리즈가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