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廣場] 편견을 깬 手語 연극 ‘너의 하루’
교육극은 재미가 없다는 편견이 있다. 극의 주제가 지나치게 또렷하고, 배우와 관객의 상호 작용 방향이 선생님과 학생처럼 일방통행로가 되기 때문이다. 향유와 여유를 위해 찾은 공연장에서 학습 부담과 교화 압박을 느끼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 스마트폰과 유튜브 콘텐츠의 발달로 모두가 똑똑해진 시대가 열렸다. 비록 얕지만 방대한 지식을 손쉽게 취할 수 있는 현대인들은 가르치는 자리에 서고 싶을 뿐, 배우는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교육극은 고질적인 단점을 돌파하고자 상업극의 요소와 고전극의 요소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범벅이나 맹탕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극단 ‘두 번째 계획’의 수어(手語) 연극 ‘너의 하루’는 이런 편견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장애 인식 개선 교육극이었고, 농인(聾人) 배우 방대한 씨가 주인공 우리 역을 맡았다. 외형만 보고 재미없고, 가르침만 받아야만 하는 뻔한 공연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용도 교육극 치고는 재밌었지만, 무엇보다도 연출이 매우 훌륭했다.
수어로 대사를 전달하는 농인 배우 뒤에서 청인(聽人) 배우가 발성으로 연기했고, 청인 배우가 음성으로 대사를 전달하면 농인 배우가 동시에 수어로 표현했다. 그래서 자막이 전혀 필요치 않았다. 연극의 첫 장에서는 이런 방식이 익숙지 않아 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수어 동작에서 말이 들리는 듯했고, 음성 대사에서 수어가 보이는 듯했다. 공감각이었다. 연극 내내 수어는 잘 짜인 무용처럼 시각화되면서 동시에 음성으로 청각화 됐다.
극에 삽입된 음악에서도 공감각적인 연출을 시도했다. 배경 음악인 연주곡은 동영상을 활용해 색·그림·이모티콘 등으로 시각화했고, 가사가 있는 노래는 배우가 비교적 쉬운 수어로 표현하며 불렀다. 농인, 청인에 상관없이 모두 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훌륭한 발상이었다. 한 시간이 금방 흘렀고, 마지막 장과 커튼콜은 매우 감동적인 연출이었다.
연출 이외에 공연장 환경에서도 세심함이 돋보였다. 티켓 부스에는 장애인을 위한 수어와 필담 안내 창구가 따로 있었고,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한 ‘도움 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공연이었지만, 비장애인이 감내해야 할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사실 이 공연을 보러 간 이유는 ‘장애 인식 개선’보다는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수어’가 궁금해서였다. 예전부터 메시지와 이미지 전달에 언어적 요소보다는 시선·표정·음색·거리·제스처 등 비언어적인 요소가 훨씬 크다고 생각했다. 이를 연극적·철학적·총체예술적으로 적용해 보려 했다. 게다가 근래 관람한 극작가 닉 페인의 연극 ‘별무리’,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수어를 활용한 연출이 등장한 터라, 비언어적 표현 방법으로서의 가능성과 예술적 이식에 관한 호기심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본래의 관람 목적은 막이 내려가면서 지워졌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장애에 관한 편견과 교육극에 관한 선입견에 균열이 갔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이자 연출가인 김재우 예술감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수화가 아닌 수어, 정상인과 일반인이 아닌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자고 권했다. 그리고 장애를 예술로 포장해 상품화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김재우 연출가의 이 언어적 메시지에는 진국의 시선, 진동하는 표정, 진지한 음색의 비언어적인 요소가 진하게 얹혀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농인 배우와 청인 배우 그리고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연출가의 진심에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느꼈다.
문턱 없는 문화 예술을 지향하는 극단 ‘두 번째 계획’의 표어는 ‘괜찮아! 우리에겐 두 번째 계획이 있어!’다. 그들의 세 번째, 네 번째 계획에 미리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공연 때마다 ‘괜찮아!’보다는 ‘좋았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