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커가는 한국..."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시대 다가온다"

2024-06-06     정구영 기자
/그래픽=김상혁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747을 내세웠다.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GNI)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이 골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474를 들고 나왔다. 경제성장률 4%, 70% 고용률, 1인당 GNI 4만 달러가 뼈대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모두 국민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1인당 GNI의 4만 달러 달성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까지 1인당 GNI 4만 달러를 약속했는데, 이번에는 실현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1인당 GNI 4만 달러 시대의 개막이 목전에 다가온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NI는 3만 6194달러로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6위다. 무엇보다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한 것이 고무적이다.

1인당 GNI는 한 나라 국민이 국내와 해외에서 벌어들인 명목 GNI를 총인구로 나눈 뒤 환율을 반영해 계산한다. 환율이 하락하면 달러로 환산한 1인당 GNI가 늘어나고, 반대의 경우엔 줄어든다. 이 때문에 원·달러 환율은 1인당 GNI의 중요한 변수다. 실제 한일 사이의 1인당 GNI를 역전으로 이끈 ‘방아쇠’도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통계기준 개편과 함께 슈퍼 엔저가 꼽히고 있다.

한국은행은 5년마다 한 번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년을 바꾼다. 신산업을 추가하는 등 경제 상황을 더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면 1인 미디어, 공유공간사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그동안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이 대거 반영되면서 결과적으로 경제 규모 자체가 커진다. 여기에 엔화 가치가 원화보다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면서 10여년 만에 반토막 수준이던 우리나라의 1인당 GNI가 일본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기준년을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바꾸면서 지난해 명목 GDP가 올 들어 지난 3월 발표된 2236조 원보다 7.4% 늘어난 2401조 원으로 커졌다. 달러로 환산하면 1조 8394억 달러다. 이의 영향으로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 순위는 세계 12위로 높아졌다. 기존 명목 GDP 기준으로는 호주 1조 7968억 달러와 멕시코 1조 7889억 달러에 뒤져 14위까지 밀려났지만 개편 이후 두 계단 상승해 2022년 순위를 유지하게 된 것이다.

모수인 명목 GDP가 커지면서 부채 관련 지표도 개선됐다. 가계부채비율, 국가채무비율 등이 명목 GDP 대비 비율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00.4%였던 가계부채비율은 93.5%로 낮아졌다. 국가채무비율도 50.4%에서 46.9%로 하락했다.

이번 개편으로 GNI 역시 늘어났다. GNI는 GDP에서 교역조건 변화에 따른 실질 무역손익, 그리고 외국인이 국내에서 벌어 간 소득과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차이를 제거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GNI가 3만 3745달러에서 3만 6194달러로 7.3% 뛰면서 일본의 3만 5793달러를 넘어섰다.

일본은 지난 1992년 1인당 GNI가 3만 달러대로 진입한 후 3년 만인 1995년 4만 달러의 벽도 넘었다. 2012년에는 5만413 달러로 우리나라의 2만 6865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하지만 장기 불황을 겪으며 일본의 1인당 GNI는 3만 달러 중반으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우리나라는 1만 달러 가까이 늘었다.

이는 역대급으로 낮아진 달러 대비 엔화 가치의 영향이 크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 4월 말 34년 만에 160엔대를 찍었다가 최근 155엔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번에 일본의 GNI를 계산할 때 참고한 환율은 지난해 평균 환율인 140엔이다. 재작년 평균 환율이 132엔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달러로 표시한 일본의 1인당 GNI는 1년 만에 앉아서 6%가량 손해를 본 셈이다. 앞으로 양국의 환율 변화에 따라 1인당 GNI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일본은 10년 이상 지속된 아베노믹스로 인해 통화정책과 환율정책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져 있다. 엔·달러 환율이 175엔까지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1인당 GNI에서 우리나라의 우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