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廣場] 깊고 묵직한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024-05-08     여진 연극평론가·콘서트기획가
여진

피악(P.I.A.C.)은 연출가 나진환을 중심으로 2002년 창단한 극단이다. 2010년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장편소설 '악령'을 예술의전당에 올리면서 극단의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의 포문을 열었다. 뒤이어 2012년에는 시리즈의 2탄인 ‘죄와 벌’이 대학로 예술극장에 올랐다.

그리고 2017년, 나진환 연출은 도스토예프스키 최후의 대작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장장 7시간짜리 연극으로 만들어냈다. 커다란 사건이자, 거대한 충격이었다. 길이도 길이지만 주연배우인 정동환의 사투에 가까운 연기와 연극이 뿜어낸 문학성에 큰 화제가 됐고, 또 많은 상을 휩쓸었다. 이후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는 에드거 앨런 포 '배반의 심장', 단테 '신곡-지옥편', 카뮈 '이방인'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와의 대화' 등 굵직한 문학작품으로 그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뜨거운 성원을 업고 2021년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재공연됐다.

원작의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각색, 대배우 정동환을 위시한 수많은 배우의 열연 그리고 압도적인 무대. 카라마조프가의 7시간은 140년 전 종이 위에 누워버린 도스토예프스키의 활자들을 무대 위에 일으켜 세운 경이였다. 철근 같은 시간을 버틴 배우들의 철인 같은 연기도 단단했지만, 인간 본성을 파헤친 원작자 도스토예프스키를 꿰뚫는 나진환의 연출은 정말 대단했다.

특히 세계 소설사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인 ‘대심문관’에서 나진환 연출은 자신의 문학적 깊이를 미학적으로 남김없이 발산했다. 대심문관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철학관과 종교관이 집대성된 서사시이자 논문이다. 소설에서 냉철한 무신론자인 둘째 아들 이반은 정교회 수도승인 동생 알료샤에게 자신이 쓴 ‘대심문관’을 길게 인용한다. 인신론(人神論;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이론)을 내세우는 이반-대심문관과, 신인론(神人論;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전통적인 종교관)을 대변하는 알료샤-예수가 정면을 맞부딪친다. 깜깜한 지하 감옥. 심문하는 대심문관의 논리는 빈틈이 없고, 헐벗고 나약한 예수는 듣기만 할 뿐 어떠한 저항도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숨이 동파하고, 뇌와 심장이 괴사되는 장면이다.

나진환 연출은 어두운 무대 위에 가냘픈 예수를 세워두고, 구소련의 붉은 제복에 스탈린의 장화를 신은 대심문관을 위압적으로 등장시켰다. 대심문관 역의 정동환 배우는 긴 대사를 막힘없이 뿜어내면서 페인트로 범벅이 된 찰흙 덩어리를 예수에게 사정없이 던지고 거칠게 문댔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로 순결하고 무형(無形)인 예수는 점점 오염되고 형체를 갖게 된다. 바이올린의 가장 팽팽한 현이 진공의 주파수로 떨리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현은 예수가 대심문관에게 천천히 입맞춤하면서 끊어진다.

‘카라마조프’의 어원이 ‘검은 칠을 하다’라는 점, 미완성으로 남은 소설에서 주인공인 셋째 아들 알료샤가 러시아 민족의 아버지인 황제를 암살한다는 점, 그리고 대심문관이 20세기에 불어닥칠 야만적 이념들을 예견했다는 점을 온전히 품어낸 깊고도 세련된 연출이었다. 정동환도, 러시아 문학 전문가들도 그리고 연극 평론가들도 모두 이 장면에 큰 감명을 받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극단 피악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변주 격인 모노드라마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선보였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의 융합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지만, 정동환 배우가 ‘지향(志向)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대심문관 그리고 ‘방황하는’ 파우스트, 이반, 알료샤까지 1인 5역을 해낸 점이 놀라웠다. 또 다른 변주인 연극 ‘이반과 스메르자코프(인문학적 성찰 XVII)’가 5월 16일부터 26일까지 대학로 티오엠 극장에 올라간다. 문학과 연극 그리고 극단 피악과 정동환 배우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극단 피악과 나진환 연출의 ‘인문학적 성찰 시리즈’ 연극은 어렵고, 길고, 무겁다. 하지만 언제까지 쉽고, 짧고, 가벼운 연극만이 무대를 차지해야 하는가? 요즘 연극 무대의 마룻바닥은 사뿐한 총총걸음에 늘 허전하고 간지럽다. 고목의 나뭇결을 우지끈 뭉개버릴 극단 피악의 묵직한 걸음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