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의 좌충우돌] 영부인 무용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청와대 제2부속실 폐지공약을 계기로 점화된 ‘영부인’ 논란이 진행중이다. "대통령 부인은 그냥 가족에 불과하다. 법 바깥의 지위를 관행화시키는 건 맞지 않는다"는 윤후보의 말대로 국내법상 ‘영부인’에 대한 법적 권한과 의무는 없으며 ‘영부인’이라는 직함도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육영수 여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남을 높인다는 의미의 접두어 ‘영’(令)을 붙여 영부인을 사용하면서 대통령 부인을 가리키는 관행적 표현으로 굳어졌다.
해외에서는 대통령 부인을 퍼스트레이디(the First Lady)로 부른다. 1849년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 돌리 매디슨의 장례식 때, 재커리 테일러 당시 대통령이 그렇게 지칭한데서 유래했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예우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퍼스트레이디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만 프랑스에서는 2017년 마크롱 대통령이 미국식 퍼스트레이디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하려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다. 퍼스트 레이디의 대외 활동에 추가 재정이 들어가는데 선출직도 아닌데 국고에서 별도 예산을 배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지금 우리는 양성 평등을 지나 걸 크러쉬를 지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리더십과 외교력를 발휘하는 각국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매일같이 국제 뉴스에 등장하는 마당에 남편의 해외 순방에 ‘무임승차’해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수시로 갈아입고 외국 정상의 부인과 사진찍는 ‘영부인 외교’는 빛을 바래간다. 육영수 여사로 대표되는 ‘내조 정치’역시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시절 영부인이 여성관련 정책 집행에 힘을 실어줬던 옛날 이야기다.
남편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의 아내를 보고 싶다. 영부인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