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국의 컬처 & 트렌드] 영화적 상상력과 정치적 무지함
12·12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1일 기준 누적관객 700만을 넘어섰다. 편향성 시비와는 별개로 일단 영화 자체는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서울의 봄’은 ‘남산의 부장들’(2020), ‘그때 그 사람들’(2005)의 계보를 잇는 정치 소재 영화다. 12·12 사태는 MBC ‘제4·5공화국’(1995, 2005), SBS ‘코리아게이트’(1995) 등 드라마로도 종종 다뤄졌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과거사를 바로잡는다면서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진부한 소재다.
정치 드라마들에는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우선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선-악 구도 설정, 악역을 맡은 캐릭터의 과장된 연기, 역사적 사실이나 배경의 자의적 설정 등인데, 이는 김치를 응징의 도구로 쓰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문법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드라마가 흥행하려면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 악당을 비난하는 재미는 필수다. 그러나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는 선의를 가진 정파들이 싸우기도 하고, 나쁜 이들끼리 싸우는 일도 다반사다.
정치색을 띤 영화들은 국제정치의 상식을 외면하고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경우도 많다. 고종의 진짜 옥새(도장)를 찾아오면 한일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설정의 ‘한반도’(2006), 남북한이 핵무기를 나눠가지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강철비’(2017)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봐주기 어려운 수준의 국제정치적 무지(無知)를 보여준다.
아직 신군부와 5공화국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 것을 보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영화는 재미로 보면 그만이라지만, 오늘날 북핵 위기 앞에 과거 ‘공동경비구역’(2000)이나 ‘웰컴투동막골’(2005)이 보여준 감성은 초라하기만 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시대 상황이나 새로운 자료에 의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유념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