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일국의 컬처 & 트렌드] K-팝이 그래미 장벽을 넘으려면
K-팝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음악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판매순위 상위 400개 음반의 누적 판매량이 총 1억 장을 넘어섰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10개 중 8개가 K-팝이었다. 그러나 내년 2월에 있을 66회 그래미 시상식에선 한국 가수들은 단 한 팀도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는 올해부터 K-팝 4개 부문을 신설해 따로 시상하고 있다. 아직은 K-팝을 주류 팝 음악과 대등하게 볼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통적으로 영·미 주류 시장은 작곡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을 우대해왔다. 일례로 간판 음악방송 ‘MTV 언플러그드’는 출연자들에게 전자악기를 못 쓰게 함으로써 민낯을 보여준다. 록 뮤지션들을 골탕먹이는 콘셉트에도 불구하고, 닐 영(Neil Young), 키스(KISS),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 등이 출연해 통기타와 피아노, 타악기만으로 멋진 공연을 보여줬다. 90년대부터 이 프로그램은 진짜 뮤지션들의 자격증 역할을 해왔다. 화려한 무대와 조명, 각종 전자악기들로 부족한 실력을 포장해온 뮤지션들은 여기에 출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70-80년대 한강의 기적과 K-팝 신화는 수출지향형이었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정부와 기획사가 철저히 시장과 고객의 성향을 분석하고, 상품 기획과 출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돌린 것도 비슷하다. 오늘날 과거 속도전에서 불가피하게 후순위로 밀렸던 인권과 사회 통합을 고민하듯, K-팝 역시 그간 상업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미뤄둔 것들을 고민할 때가 됐다. 우선 가수의 틀린 음정을 사후보정하는 오토튠 없는 음악 방송이 하나 있었으면 한다. 그래미의 벽을 넘고, 세계 시장에서 동등한 팝으로 대우받기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