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간부보다 좋은 차를 타다니

2023-10-26     도명학 탈북작가·법무법인 법승 전문위원
도명학

북에서 온 지 17년, 그동안 필자가 자가용을 바꾼 회수가 여러 번이다. 첫 차는 중고차였다. 값이 200만 원이 좀 넘는 노후된 차였다. 요즘 환율로 환산하면 1500달러 정도인데, 북에서는 쉽게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북한 해외 파견근로자가 러시아에 가서 시베리아 강추위 속에 나무통과 씨름하다 귀국해도 3년 모은 돈이 2000달러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한 달 월급 정도로 중고차를 탈 수 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남쪽에 온 지 반 년 만에, 같은 아파트에 15년 되는 차를 타는 사람이 있었는데 필자가 면허증 취득한 사실을 알자 자기 차를 사라고 했다. 시동도 잘 잘되고 쭈그러진 곳도 없었다. 자동차를 몰고 싶은 충동에 대뜸 넘겨받았다. 그 차를 운전하는 동안 돈도 모아졌고 새 차를 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처음에는 몰랐으나 남한에선 누가 어떤 차를 타는가에 따라 은근히 자존심 상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남자들이 더 그랬다. 예컨대 부하직원이 사장님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출근하면 ‘건방지다’ 하고, 삼성차 직원이 남의 회사인 현대차나 쌍용차를 타면 ‘기본이 안 된 놈’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도 점점 중고차 타기가 부끄러워졌다. 북에서라면 그 차도 웬만한 당 간부 차보다 훨씬 좋은데도 욕심이 자란 것이다. 지인이 뽑은 신차를 운전해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승차감이 어떻고 스릴이 어떻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더니 그걸 느낄 줄 알게 된 것이다.

북에서는 자전거도 없어 하루 왕복 16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걸어서 출퇴근했다. 기름이 없어 시내버스도 다니지 않고 통근열차도 멎어버린 그 먼 거리를 10년이나 걸어 다녔다. 그래서 자전거가 제일 큰 소망이었다. 그러나 우리집 형편에 아이들 밥그릇을 줄이면서까지 자전거를 마련할 생각은 없었다. 자전거 중에도 일본산이 제일 비쌌다. 국내산도 좋은 것은 있었다. ‘갈매기’ 자전거는 일본산보다 좋았다. 그러나 국가보위부 산하에서 생산되는 ‘갈매기’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어쩌다 한번 운수가 좋아 친척 방문 차 북에 온 재중 동포로부터 중국산 자전거를 선사 받은 적이 있었다. 심부름을 열심히 들어준 대가였다. 그때의 기쁨은 남쪽에서 자동차를 샀을 때만큼 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타지 못하고 먹을 것과 바꾸고 말았다.

그러던 삶이 남한에 와서 부자가 된 셈이다. 가끔은 꿈인지 생시인지 아리송할 때 있다. 행복하면 옛 처지를 잊기 쉽다. 그래도 탈북자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 시각도 북녘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