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청소년들 "공부에서 밥이 나오나?"
북한 경제난은 학업에 대한 청소년 태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필자의 청소년 시절엔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부끄러웠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아이들은 "나는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어, 머리가 안 돌거든"하고 마치 자랑처럼 당당하게 말해도 비웃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각자의 갈 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할 뿐 공부 때문에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처세술 능하고 주먹 센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공부 귀신"이라고 놀려댈 정도다. "공부에서 밥이 나오냐?" 한다. 아이들 탓도 교사들 탓도, 학부모 탓도 아니다. 북한 사회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 김일성 사망 후 아사자가 속출하면서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교사들도, 대학교수들도 겨우 출근하는 정도였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 자재는 학부모에 의지해야 했다.
김정일은 몇몇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특별히 선발해 공부시키는 수재학교(영재교육)인 제1고등중학교를 곳곳에 만들었다. 입시경쟁을 통해 그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만 대학교에 갈 수 있고, 일반학교 학생들은 졸업하면 군대에 가거나 직장에 보내졌다. 그러니 공부보다는 일찍 돈벌이에 눈을 돌리거나 처세술을 익히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굶어 죽지 않는 것만도 기적인 세월이었다. 대학생들도 학업은 뒷전이고 먹을 것과 돈이 먼저가 됐다.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커서 ‘소달구지꾼’이 된다는 부모님 훈시를 흘려듣지 않았던 필자의 청소년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일 뿐, 공부는 오히려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이 됐다. 대학은 출세를 위한 졸업증 하나 때문에 가는 것일 뿐 지식을 배우러 가지 않는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대학생 공부 귀신’들도 있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 선생님이 되면 학부모들에게 구걸을 하고, 연구사가 되면 단벌 정장에 해진 양말을 기워 신는 모습이 아이들 눈에 희망일 수 없다. 학부모들도 공부보다는 살아남을 줄 아는 현실 감각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자기 아이가 영재가 아니라는 판단만 서면 그냥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단 출신 성분이 좋거나 재력 있는 사람들은 금지된 가정교사까지 몰래 붙여 자녀를 공부시킨다. 그 경쟁은 만만치 않다. 공부만 잘하면 권력층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때문이다.
이것은 북한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대학 공부를 해서 특권층이 된 자는 사회 발전에 필요한 리더가 아니라 부패해서 증오 대상이 되고, 공부를 못한 자는 현대문명에 따라갈 능력이 없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북한 현실을 생각하면 남한에서 말하는 ‘입시지옥’은 복(福) 속에서 복을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 경쟁이 지나친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지식인력이 넘쳐나는 사회가 낫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