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 도시, 과연 이상향인가

2023-08-24     와타나베 미카 KCU 국제위원장
와타나베 미카

‘15분 도시’는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일자리·쇼핑시설·병원·학교·공원·문화 및 복지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다는 도시계획이론이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제창했고,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실제 추진되고 있다.

파리의 안 이달고 시장도 2020년 재출마할 때 15분 도시 구축계획을 선거 공약에 넣었다. 캐나다 오타와도 15분권 내 도시계획안을 제시했고, 호주 멜버른에서는 20분권 도시계획이 채용될 전망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는 ‘슈퍼 블록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15분 도시를 브랜드 정책으로 내세우고, 제주도에서도 15분 도시 문화정책을 추진 중이다.

15분 도시에는 최대한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고 녹지를 늘려 공기를 정화, 지구온난화를 막아내려는 취지가 있다. 녹지가 많아지고 걸어서 산책하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은 언뜻 쾌적하고 편리한 이상향인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 뒤에 숨어있는 부정적 측면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미국 시카고에 ‘카브리니 그린’(Cabrini-Green)이라는 공영주택 건설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러나 건설 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 지역은 빈곤과 범죄의 온상이 됐다. 50년 후에는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다.

원래는 조화로운 유토피아 건설을 계획했던 것이, 실행 후에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되는 사례는 의외로 많다. 스페인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수많은 대규모 도시계획 프로젝트가 정지됐다. 중단된 프로젝트는 그대로 방치됐다. 전국 곳곳에 폐허가 산재하는 비참한 사태를 맞게 됐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그 규모에 있어 스페인이 입은 피해가 가장 컸다고 한다.

현재 스마트 시티 건설계획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더 라인’은 길이 170km, 폭 200m, 높이 500m의 주거용 건축물을 구상하고 있다. 주민들은 모든 생활 편의 시설에 5분 내로 이동 가능하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도시 계획자가 개개인의 생활 방식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그 지역이 가진 역사나 문화, 생활방식과 상반될 경우도 있을 것이다. 획일적인 생활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정신적 영향도 장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될 우려도 있다. 해외에서 강한 반대운동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