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든 흑인여성, 보수 깃발로 민주당 아성 깨며 좌파에 강펀치

[손태규의 미국이야기] ⑦ 윈섬 시어스,흑인여성보수의 승리 흑인남자 19%·여성 5%만 트럼프 찍은 버지니아주 부지사로 나서 승리 좌파, 흑인·이민자에 증오 퍼부어...인종·지역 문제 등 진정성으로 돌파 “미국은 내게 많은 걸 얻도록 해줬다...해병대 입대, 미국 위해 죽으려 했다” 흑인·여성에 아부 않고 좌파 눈치 안 봐...한국 보수우파들 교훈 삼아야

2022-02-03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윈섬 시어스의 선거벽보. '전투를 경험한 보수주의자'라는 문구와 함께 총을 든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당한 소신은 예상을 뒤엎은 승리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보수는 좌파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좌파는 우파를 악마로 여긴다." 미국에서 보수우파로 산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들은 좌파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데 공포를 느낀다. 온갖 비난, 모욕, 따돌림을 감당해야 한다. 웬만하면 이념을 감춘다. ‘벽장 보수’라 한다. 정치인, 법관, 지식인에 "이름만 공화당원(RINO)," "무늬만 보수(CINO)"가 유달리 많다. 언론, 연예인 등 좌파들의 무자비한 공격이 두려워 눈치 보기 때문이다.

흑인보수라면, ‘흑인여성 우파정치인’이라면 더욱 어렵다. 현재 하원의원 435명 중 흑인 민주당 의원은 25명의 여성 등 56명. 흑인 공화당은 남자 2명뿐이다. 232년 상원 역사에서 흑인여성 공화의원은 없다. 흑인여성이 번듯한 공화당 정치인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흑인들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기 때문. 흑인 85% 가량이 민주당 지지자다.

윈슴 시어즈. 떠오르는 정치인이다. 연방의원도 아니고 버지니아 부지사일 뿐인데도. 지난해 11월 시어즈가 당선되었을 때 온 미국이 놀랐다. 미국 정치를 위한 쿠데타요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민주당 등 좌파들은 극렬한 반응을 했다. 좌파언론들은 앞 다투어 인터뷰했다. 부지사 당선자를 불러 미국정치의 미래를 진단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부지사, 주 검찰총장 등도 선거로 뽑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시어즈가 흑인여성인 이유만이 아니다. 민주당 텃밭에서 공화당 시어즈가 당당하게 보수를 내걸고 정면 승부한 결과에 놀란 탓이었다. “100% 수정헌법 제2조, 100% 낙태반대, 100% 유권자 신분증 확인.” 미국에서 좌우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현안에 시어즈는 거침없이 정체성을 밝혔다. 그녀는 총을 들고 있는 사진을 선거 벽보에 썼다. 심지어 사격장에서 총 쏘는 모습도 공개했다. 이 보다 더 선명하게 가치와 이념을 밝힐 수가 없었다. 민주당 후보는 이 사진을 선거광고에 활용했다. "너무 급진우파이며, 위험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어즈는 "나는 해병대다. 총을 다룰 줄 안다. 수정헌법 제2조는 우리에게 총 가질 권리를 주었다. 그 권리는 백인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여성을 포함해 유색인종들도 사냥하거나 자기 보호를 위해 관심을 갖는다"고 반박했다.

그녀는 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비판인종이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데도 반대했다. 시어즈는 ‘도널드 트럼프 재선을 위한 흑인 미국인들’이란 단체의 전국의장을 맡은 적이 있다. 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조 바이든에게 11%나 졌다. 언론은 그 전력이 선거에 해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시어즈는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을 도우는 많은 정책을 폈다. 왜 그를 지지하지 않겠는가"라고 소신을 밝혔다.

버지니아의 흑인남자는 19%, 여자는 오직 5%만이 트럼프를 찍었다. 절대 불리 지역. 시어즈는 인종, 성 정체성, 지역 문제를 담대한 진정성으로 돌파했다. 좌파들은 흑인들의 성공과 성취를 원치 않는다. 다른 소수인종들과 여성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영원히 하류계층으로 남아 자신들을 지지해 주는 집단이 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공화당은 흑인, 여성, 이민자들을 증오한다"고 되풀이 한다.

 

시어즈는 여섯 살 때 자마이카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다. 고교를 나와 해병대에서 4년 복무했다. 뒤늦게 2년제 대학을 마치고 고교 졸업 20년 만에 석사 학위까지 땄다. 노숙자 쉼터 책임자이기도 했다. 20년 전 버지니아의 첫 흑인여성 주 의원이 되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신병 앓는 큰딸과 손녀들을 돌보기 위해 2년 만에 정치를 떠났다. 흑인, 여자, 이민자로 사는 어려움과 설움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러나 시어즈는 이분법으로 증오심을 심는 좌파들에 정면으로 맞섰다: "나는 세 가지 모두이다. 평생 흑인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열심히 일해 얻었다. 어떤 것도 남이 주지 않았다. 뭔가 일이 생긴다면 흑인이기 때문에 또는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면서 "흑인들은 정부의 지나친 보살핌을 받아 왔다"고 지적했다. 흑인여성의 진솔한 인종 고백이었다.

애국심은 좌파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그들은 미국을 부정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증오한다. 미국은 철저한 인종차별국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어즈는 "입대했을 때 여전히 자마이카 사람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얻도록 해 주었다. 나는 미국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다"고 미국 사랑을 표현했다.

첫 여성이자 첫 흑인 버지니아 부지사가 된 윈섬 시어스. /로이터=연합

흑인여성이 보수 정책을 내걸자 후보조차 될 수 없다는 비관론이 대세였으나 본선 승리마저 따냈다. ‘총 가진 흑인여성’ 사진 등을 내세운 그녀의 당당함은 호소력을 발휘했다. 언론의 비난에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정치본능은 중도 표를 끌어당겨 승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유권자들은 인간의 진정성, 미국을 악마로 보지 않는 애국심, 단순히 권력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려는 책임성 등을 보았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특히 흑인 여성 앵커들의 야유가 심했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꼭두각시’라며 대 놓고 비웃었다. 하지만 흑인 보수여성이 전혀 흑인이나 여성에 아부하거나, 좌파를 기웃거리지도 않고도 민주당 텃밭에서 이긴 것은 좌파들에게 충격이었다. 한 평론가는 "이제 좌파들은 보수를 두려워한다. 트럼프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이제 또 다른 상대가 나타났다"라고 시어즈가 가져올 정치흐름의 변화를 전망했다.

‘시어즈 정치’는 한국정치에도 큰 울림을 준다. 좌의 표를 얻는다며 좌로 가거나 애써 흉내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우파 정치인들의 각성을 위한 경고다. 이념과 지역정치에서 이기려면 당당한 정면승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