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역전세...임대차 3법이 왜곡시킨 전세제도 결국 수술대
전세사기와 함께 깡통전세, 역전세 등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전세사고가 빈번해지면서 전세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주택정책의 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고 깃발을 올리면서 공론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세제도 폐지는 시장에서 선택할 문제지 정부가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세는 비싼 월세 부담이 없는 만큼 임차인의 주거안정과 내집 마련을 돕는 주거사다리로서의 역할이 여전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전세사기와 전세사고가 시장 내부 요인, 즉 ‘시장의 실패’에 의해 촉발됐다면 제도를 수술해야 한다. 하지만 임대차 3법 같은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면 대처 방안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 역시 전세제도의 인위적 폐지보다 전셋값이 급락할 때 임차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를 차단하는 쪽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세제도는 오랜 기간 집주인에게는 사금융, 무주택자에게는 내집 마련의 디딤돌로 기능해왔다. 최근의 전세사기와 전세사고는 3년 전 임대차 3법 시행으로 급등했던 전셋값이 지난해부터 급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현재의 전세제도가 급속히 확산된 것은 전후 경제개발과 도시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부터다. 1970∼1980년대는 전국적으로 ‘집 장사’가 유행하며 연립·다세대 등을 신축해 전세를 놓고, 그 보증금을 발판으로 또 다른 집 장사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렇게 팽창해온 전세는 2010년 이후로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임대가구 비중은 38.2%다. 이 가운데 순수 전세는 15.2%, 보증부 월세를 포함한 월세는 23.0%로 월세 비중이 훨씬 높다. 앞서 1995년까지만 해도 전세가 29.7%, 월세는 이의 절반 수준인 14.5%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전세 21.5%, 월세 21.7%를 기록하며 역전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은 정부 규제로 집값은 하락하는데 전셋값은 뛰던 시기다. 또한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은행에 목돈을 넣어놓느니 월세를 놓겠다는 임대인이 늘고, 이때부터 ‘전세 종말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전세 종말론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전세가 차지하는 시장 규모는 여전히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전세보증금 부채와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를 초과하는 준전세보증금 부채의 합으로 총 전세보증금 규모를 추산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58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7년 말의 770조9000억원에서 5년 만에 37.3%인 287조4000억원 증가한 것이다. 전세 신고가 이뤄지지 않아 통계에 빠져있는 사각지대까지 고려하면 총 전세보증금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전세제도를 없애면 모든 임차인은 강제로 월세를 살아야 하느냐, 임대인은 막대한 전세보증금을 다 내줘야 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임차인은 그동안 임대료 부담 없이 전세보증금을 맡겼다가 계약 만기 후 돌려받는 식으로 주거비 부담을 줄여 내집 마련의 발판으로 삼아왔다. 더구나 1000조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의 반환 문제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대출 등 금융시스템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원 장관도 최근 "전세제도를 폐지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대신 전셋값 급락 때 임차인의 피해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임대인의 무자본 갭투자를 막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에스크로 제도의 도입이다. 에스크로는 전세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신탁회사나 보증기관에 예치하고, 임대인은 그에 대한 이자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집주인이 추가로 집을 사려고 할 때 자기자금 투입 부담이 커져 무한대의 무자본 갭투자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대의 무자본 갭투자를 막는 방법으로 전세보증금을 매매가의 70% 이하로 규제하는 전세보증금 상한제 역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전세제도와 임대인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전세물량의 공급을 급격하게 줄여 임대차 시장의 왜곡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