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망' 한글판 대표, 지자체장·언론사들 접촉 영향력 확대

[중국의 세계지배전략 ‘초한전’] ⑭ 국내서 미디어전·심리전·법률전 벌이는 中 공산당 기관지 최문순 前 강원도지사, 2019년 베이징 인민망 본사에서 열린 ‘강원 차이나타운’ 출범 행사에서 “한국 유일의 일대일로 사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우리는 중국에 붙어가야”...명예시민증 줘 ‘여성성을 활용해 한국 고위층에 접근한 간첩으로 의심된다’는 우파매체·유튜버 보도에 인민망 소송...법원 “의혹제기 수준” 기각

2023-05-29     전경웅 기자
2018년 10월 열린 한중미디어포럼에서 저우위보 당시 인민망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행사는 인민망 한국판이 주최하고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주관했다. /연합

중국 공산당 사상을 홍보하는 공자학원, 해외에서 불법으로 치안 활동을 벌이는 비밀경찰서도 초한전 수단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초한전의 수단으로 활동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중국 관영매체다.

◇中 공산당 기관지 한국판, 우파 매체·유튜버에 소송…법원 "명예훼손 아냐"

2021년 5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판 ‘인민망’이 우리나라 매체와 유튜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에포크타임스, 파이낸스투데이, 유튜브 채널 신인균의 국방TV, 가로세로연구소, 신세기TV, 데이너김 TV 등이 인민망 한글판과 그 대표인 저우위보를 가리켜 여성성을 활용해 한국 고위층에 접근한 ‘간첩’으로 의심된다고 주장,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소송 이유였다. 당시 피소된 매체들에 따르면 저우 대표와 인민망 측은 이들에게 각각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4월 14일 서울중앙지법 제25민사부(부장판사 송승우)는 저우 대표와 인민망 측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매체들의 보도 내용은 의혹을 제기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이어서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 상 언론·출판의 자유와 책임을 언급한 뒤 "해당 보도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 존재인지 사적 존재인지, 표현이 공적 관심사인지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 구분해야 한다"면서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보도라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외교관이 아닌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국과 대한민국의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원고들의 활동이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간첩 활동에 해당하는 것인지 여부는 경계가 모호하다"며 "국내에 중공 영향력이 커지는 데 반감을 갖는 국민들로서는 원고들의 활동이 간첩 활동에 해당한다고 의심할 여지도 있다. 게다가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가진 국내 공직자를 비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간첩 의혹’ 보도에 대해 재판부는 "원고들이 국내에서 간첩 활동을 한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우회적으로 드러내거나 의혹을 제기하고 있을 뿐"이라며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국내 간첩 활동 사실을 적시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 측 주장은 살필 이유가 없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저우위보 인민망 한국대표가 여성성을 이용해 간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 때문에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남성 시각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등 다소 불량한 측면이 있으나 공산당 당원인 원고가 국내에서 수행한 활동들은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 활동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관련 보도는 허용 한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다"면서 "해당 보도는 구체적인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즉 "인민망 한글판과 그 대표가 간첩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매체들과 유튜브 채널의 주장은 합리적 의심이라는 설명이었다.

인민망 한국판과 저우위보 대표는 해당 소송보다 앞서 에포크타임스 기자에게도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해당 기자가 2021년 12월 서울 마포경찰서에 출석해 50여 쪽의 소명서를 제출하고 보도 근거를 제시하자 경찰 측은 ‘무혐의, 검찰 불송치’ 결정을 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사건은 이후 서울 서부지검에 송치됐으나 2022년 4월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인민망 한국판과 저우 대표는 즉각 항고했으나 같은 해 10월 서울고검 또한 ‘항고 기각’ 처분을 내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망에 뜬 최문순 전 강원지사 인터뷰. 당시 인민망 대표 저우위보는 최 전 지사와 교분을 쌓은 뒤로 전국 지자체장과의 인맥을 형성했다. /에포크타임스 제공

◇우파 매체·유튜버가 제기한 인민망 대표 로비설, 곳곳에서 정황 나타나

인민망 한국판과 저우 대표가 수 억 원대의 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두고 우파 진영 내에서는 저우 대표에 대한 ‘간첩 의혹 제기’만이 아니라 해당 매체와 유튜브 채널이 과거 ‘코로나 우한 연구소 기원설’ 등 중국 공산당이 언급을 금지하는 내용을 꾸준히 보도하거나 방송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평소에도 중국 공산당을 강력히 비판해 온 에포크타임스, 파이낸스 투데이는 코로나 대유행이 일어나자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의 코로나 유출설’을 시작으로 중국 공산당이 자국민을 강제 감금하고, 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하고, 코로나로 사망한 시신을 가족들 입회 없이 강제로 화장하고, 해외에는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은 것을 인용 보도했다.

또한 2020년 6월부터 몇 달 동안 벌어진 미국 내 BLM(Black Lives Matters·흑인 목숨이 먼저다)과 안티파 폭동에 중국 영사관과 유학생 등이 연루된 정황이나 중국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 등을 폭로했다.

해당 매체들은 이런 보도에 이어 저우위보 대표가 2011년 최문순 당시 강원지사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국내 지자체장, 언론과 만나 협력 관계를 맺었고, 그 결과 친중파가 크게 증가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문순 전 강원지사가 중국에 가서 ‘강원도 차이나타운’ 사업을 두고 "한국 유일의 일대일로 사업"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폭로했다.

매체들에 따르면, 저우 대표는 2011년 "중국에서 양양공항을 홍보해 주겠다"며 최문순 당시 강원지사에게 접근해 친분을 쌓았다. 이후로 저우 대표는 강원도 강릉시·평창군, 경북 경주시, 전북 군산시·익산시, 전남 담양군, 경기도 광명시, 경남 하동군, 광주광역시 남구·동구 등 지자체들과 업무협약을 했다. CJ E&M 계열사 및 10개 이상의 언론사와도 업무 협약을 맺었다.

저우 대표의 ‘발’은 시간이 흐를수록 넓어졌고, 그 영향력도 비례해 강해진 것으로 보였다. 최문순 지사는 2014년 저우 대표를 명예 강원지사로 위촉했다. 2015년 10월에는 서울시 명예시민 타이틀도 얻었다. "중국 관영 최대 인터넷 언론인 인민망에 서울시 관련 기사를 적극 게재했고, 주한 중국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서울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도왔다"는 것이 명예시민 위촉 사유였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중국에 가서 "파리가 말에 붙어 가듯 우리는 중국에 붙어 가야"라고 발언한 지 불과 두 달 뒤다.

저우 대표의 국내 진출 및 인맥 확대에 도움을 줬다고 평가 받는 최문순 전 강원지사는 2019년 12월 6일 중국 베이징 인민망 본사에서 열린 강원 차이나타운 출범 행사에서 "한국의 유일한 ‘일대일로 사업’인 ‘중국복합문화타운(홍천 차이나타운의 공식명칭)’ 조성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하게 돼 기쁘다"며 "강원도에서 작은 중국을 통해, 한중 간 문화가 융화되는 교류의 장소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을 기대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저우 대표는 뿐만 아니라 2021년 1월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이재명 경기지사, 양승조 충남지사,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민망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춘절 인사’를 하도록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초한전’의 저자 이지용 계명대 교수는 인민망 한국판의 소송 제기 등을 두고 "현지 법률을 악용해 중국 공산당의 의도를 관철하고 우리나라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중국 공산당의 전형적인 법률전"이라고 지적했다. ‘초한전’의 주축인 인지전과 법률전, 여론전 가운데 인지전에 속하는 미디어전과 법률전을 동시에 구사한 사례라고 이 교수는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