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전세 수명 다했다"…업계선 "폐지땐 월세 급등·양극화 자명"

2023-05-18     송원근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경기도 의정부시 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아이돌봄 클러스터 시범사업 간담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전세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공언하면서 전세제도가 크게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월세보다는 전세가 부담이 더 낮은 것으로 인식해 전세를 선호하는 게 보통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정부가 전세제도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면서도 실제로 전세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도 설왕설래 하고 있다.

‘운명을 바꾸는 부동산 투자 수업’ 저자이자 부동산중개법인 ‘디벨로’ 정태익 대표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부동산 읽어주는 남자’(구독자 수 102만명)에서 스스로를 ‘전세 폐지론자’라고 밝히면서도 전세제도가 사라졌을 때 나타날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난 3월 6일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내 총 전세보증금 규모는 1058조원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정 대표에 따르면 이 1058조원을 보증금으로 받아놓은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반환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게 된다. 이때 집주인들은 주담대 이자를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데, 이 이자가 바로 임차인에게 요구하는 월세의 기준이 된다. 결국 임차인들은 ‘집주인의 주담대 이자+알파’ 만큼을 월세로 내야 한다. 여기서 ‘알파’는 ‘수리비+집주인이 내야 하는 각종 세금+추가 이윤’으로 구성된다. 이 월세는 자연히 저리인 전세자금대출 이자보다는 더 높은 수준일 게 분명하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1058조원에 해당하는 주담대 이자 이상의 월세가 새로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전세와 월세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 경쟁자인 전세가 사라지면 월세는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또 전세는 일시에 거액의 보증금을 반환해줘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이 차기 보증금을 올리려는 유인보다 차기 세입자를 빨리 구하려는 유인이 강하다. 차기 세입자를 제때 구하지 못하면 보증금에 이자까지 더해 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세 임대인들은 적정한 수준에서 가격을 타협해 새 세입자를 구한다. 시세보다 적은 전세가격이 나오기도 하는 이유다. 하지만 월세는 다르다. 월세 임대인들은 공실이 전혀 두렵지 않다. 월세를 깎아서 새 세입자를 구하느니 최소한 시세대로 가격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공실로 내버려둔다.

정 대표는 이어 신규분양 물량 감소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전세가 있기 때문에 신규분양이 좀더 원활한 면이 있다. 그런데 전세가 없어지면 다주택자가 분양을 받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당연히 신규분양 수요가 그만큼 감소할 것이며, 그에 맞춰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주택공급이 줄면 그만큼 임대 공급물량도 줄어들 게 자명하다. 임대료가 오를 여지가 또 생기게 되는 셈이다.

다음으로는 주택시장 양극화 문제다. 정 대표는 "투자가치가 없는 낡은 빌라촌 가격이 급락할 것이며 가격이 떨어져도 매입할 사람도 없다"라며 "문제는 매수하기는 싫지만 거주할 수밖에 없는 집이 있는데, 그런 집을 가진 집주인은 집을 파는 걸 포기하는 대신 월세를 어떻게든 높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현상은 지금도 볼 수 있는데, 지방에 위치한 대학교 바로 앞에 있는 ‘나홀로아파트’는 매도가 안돼 집값이 싼 대신 월세 수익률이 12%에서 15%까지 달하기도 한다. 일종의 ‘배짱장사’가 가능한 입지가 있다는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6일 세종시 한 식당에서 취임 1주년 맞이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갖고 전세제도 자체를 손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 장관은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온 역할이 있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며 "전세제도라는 건 임대인이 세입자한테 목돈을 빌린 것인데 갚을 생각을 안 한다는 게 황당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원 장관은 전세사기 원흉으로 지목된 임대차 3법에 대해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원 장관은 "임대차3법 전체를 어차피 개정해야 한다"라면서도 폐지까지 감안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꼭 폐지라는 답만이 아니라 전세제도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전월세 전환율, 가격, 기간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억지성을 없애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잘잘못을 떠나 앞으로 예상되는 임대차 시장의 많은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복기해서 가장 근본적인 제도를 내놓을 때가 됐다"며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제대로 판 위에 올려서 한번 큰 그림을 짜보자는 각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