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 전세금도 못 돌려받나..." 전국 덮친 전세포비아

2023-04-24     정구영 기자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원이 정부의 실효성있는 대책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

최근 전세사기 사태로 ‘전세 포비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셋값이 폭락하면서 역전세와 깡통전세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전 세입자가 낸 전세보증금만큼 내줄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을 통칭하는 빌라의 전세가율은 천정부지로 올라 일부 지역에서는 매매가의 100%를 넘어서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임대차 사이렌’에 따르면 올해 1∼3월 전국 시군구에서 연립·다세대주택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곳은 총 25곳으로 집계됐다. 전세가율 80%는 깡통전세로 판단하는 기준치인데, 3월 기준 전세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대전시 대덕구로 131.8%에 달한다.

이에 따라 멀쩡한 집주인까지 전세 사기범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떤 대책이 나와도 모든 전세사기 피해를 구제할 방법은 없어 지속적인 사회 문제가 될 공산이 큰 상태다. 전세사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연립·다세대주택 등 빌라의 시세 정보를 투명화하고, 전세자금대출의 보증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2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현행 전세 계약에서는 만기 시점의 계약 불이행에 대한 페널티를 정의하지 않고 있다. 계약 2년 후 임차인이 재계약을 원하지 않지만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 이는 채무불이행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세 계약에는 임대인이 어떤 식으로 페널티를 받을지 또는 임차인에게 어떤 식으로 보상할지 명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전세 계약은 보증금 상환을 담보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부족하다. 집을 살 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대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전세는 주택을 매개로 하는 개인간의 금융거래이기 때문에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전세 거래에서는 실질적으로 자금을 빌리는 임대인의 신용 상태 등을 임차인이 충분히 점검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임차인은 해당 주택에 대한 담보 설정 및 채권 순위 등을 확인하고, 확정일자를 설정하는 등 만일에 대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임대인의 신용 상태와 연체 이력 등 향후 보증금 반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을 사전적으로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

통상적 인식과 달리 전세제도는 미국 루이지애나주(州)를 비롯해 프랑스와 스페인에도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에 일반적인 계약 형태로 전세가 존재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볼리비아 뿐이다. 볼리비아 역시 전세 비중은 3.5%에 불과해 우리나라 특유의 주거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세사기 사태를 계기로 일각에서는 전세제도 폐지를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괴리된 주장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전세는 우리 국민 15%가 이용하는 주거 유형인데다 임차인은 물론 임대인에게도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실제 임차인 입장에서 전세는 주택가격 대비 저렴한 비용으로 보유자금을 넘어서는 수준의 주거공간을 2년간 보장받을 수 있다.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자가로의 주거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주거 사다리’ 역할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매매를 하면 각종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물론 재산으로 간주돼 무주택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놓치게 된다. 특히 현재의 전세자금대출 금리 수준에서는 월세 지불로 매월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는 것보다 전세가 유리하다. 임대인의 경우 목돈 마련은 물론 매매가에서 전세가를 뺀 적은 금액, 즉 ‘갭’으로 집을 매수할 수 있다.

이처럼 전세제도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인위적 폐지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빌라의 시세 정보를 투명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거래가를 알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은 물론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정보 제공, 임대인 변경의 경우 세입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를 키운 요인 중 하나가 전세자금대출의 높은 보증 비율인 만큼 이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한국주택금융공사(HF)는 90%,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서울보증보험(SGI)은 각각 100% 보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