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수첩] 애즈베리 부흥의 명(明)과 암(暗)

진리와 회개가 결여된 부흥의 한계

2023-03-10     곽성규 온라인뉴스부 차장·미션팀장
곽성규

지난 2월 8일 미국 켄터키주 애즈베리대학교(Asbury University) 채플 후 기도 모임에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채플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까지 이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메시지를 품고 기도하던 19명의 학생들을 통해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가 나타나는 ‘부흥’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18일간 연속 집회가 이어지는 ‘애즈베리 부흥’이 미국 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1500석의 대학 채플 강당은 가득 찼고, 부흥의 소식을 듣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8~9시간을 기다리며 기도회에 동참했습니다. 인파가 몰려 강당이 차고 넘치자 길 건너 애즈베리 신학대학원 채플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기도 모임이 생겼고,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며 부흥은 계속됐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부흥은 학사운영의 마비와 안전사고를 우려한 학교 당국의 연속집회 마감 선언에 의해 2월 24일 채플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는 마무리 됐습니다.

이번 애즈베리 부흥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례 없는 불안을 안고 있는 이 청년세대에게 손에 잡힐 듯 분명히 느껴지는 평안을, 팬데믹을 거치며 외로움과 우울증 한가운데 있는 이 세대에게 회복과 희망을, 권력 남용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이 세대에게 겸손을, 디지털 자극과 방해에 익숙한 이 세대에게 현장의 참여적 경배 등을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가르치고 부어주시며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만나 주신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직접 참여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애즈베리 부흥의 현장은 어떤 거대한 역사가 나타난 것이 아닌 조용하고 평온하고 질서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늘이 갈라지는 기적이 아니라 참석한 사람들 마음마다 차분하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적 임재로 가득했습니다. 체계적인 준비가 없었지만, 찬양과 기도와 예배는 진정한 마음을 담은 영혼의 울림이 온 예배당에 넘쳤습니다. 또 미국 전역에서 유명 목사‧찬양인도자들이 몰려왔지만 그 어떤 알려진 리더들을 세우지 않고 평소와 같이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계속 예배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런 흐름의 애즈베리 부흥은 미국 전 지역의 대학 캠퍼스‧사역단체 등의 청년들을 통해 자발적 예배와 기도, 전도모임으로도 확산됐습니다. 알라배마주 샘포드대학교, 테네시주 리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도회와 예배가 시작됐고, 메네소타주 청년사역단체인 ‘펄스’에서는 애즈베리를 방문했던 리더들이 주도해 시내에서 정기적인 월례 대학·청년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부흥을 경험한 오하이오주 시더빌대학교 학생 수십 명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역의 캠퍼스들을 흩어져 방문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애즈베리 부흥의 어두운 면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번 부흥에 대한 문제제기도 하고 있는데, 먼저 애즈베리 체플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리더십 중 한 명인 엘리야 드레이크라는 청년이 동성애자(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거룩한 좌파’(holy leftest)로 스스로를 소개했고, 자신이 신학생이자 동성애자이고, 수업중에 동성에자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또 동성애자(LGBT)들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고도 했습니다.

에스베리 부흥 8일째에 찬양 인도를 했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그는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퀴어(Queer, 성소수자들이 스스로를 나타내는 말.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 트랜스젠더 등을 아우르는 명칭)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성소주자들이 이번 부흥을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동성애는 죄’라는 뜻의 글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애즈베리 집회 현장에 참석한 청년이 쫓겨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로마서 1장(26-27절) 말씀처럼 동성애는 죄’라는 글이 새겨진 티셔츠를 집에서부터 입고 왔는데, 계속 평화적으로 있었던 그를 경비원들이 쫓아냈다고 합니다. 쫓아내는 이유를 불어봤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청년은 뒤늦게야 자신의 티셔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부흥의 현장에서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을까요. 애즈베리 부흥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위로와 회복, 하나됨이 강조된 부흥이었지만, 성경적인 명확한 진리의 말씀과 회개의 메시지는 부족했던 부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한계로 미국의 기독교가 가장 큰 위기에 처하게 된 요인 중 하나인 동성애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성소수자들에 대해서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만, 그 기도는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도록,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돕는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이 깨닫고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뜨거운 감동이나 격렬한 체험,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에 치우친 부흥은 말씀에서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감동과 체험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없고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에서 돌이킴이 없는 부흥을 과연 우리는 과연 진정한 부흥이라 평가할 수 있을까요.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지만, 무엇보다 진리의 말씀에 찔림을 받아 깊은 회개가 이뤄지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부흥이 아닐까요. 진리와 말씀, 회개가 결여된 부흥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까지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쌓인 기도와 순수한 학생들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뜨겁게 일어난 애즈베리 부흥이 18일만에 아쉽게 끝난 것도 어쩌면 이런 한계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타협없는 강력한 성경적인 말씀 선포, 회개를 강조하며 죄에서 돌이킴을 촉구하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설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첫 설교처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마 4:17)라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겸손하게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직하게 외치는 자들에 의한 ‘더 크고 강한 부흥’이 대한민국에 임하기를 기도해봅니다.

 


추신 :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부흥의 목적은 그 시대와 환경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생각으로 모두 재단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애즈베리 부흥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폄훼하는 일이 될까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필자의 심경입니다. 그간 일어났던 부흥에 대해 우리가 관대하게 해석한다면 각각의 부흥의 독특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운트 헐몬 부흥의 ‘대위임령에 대한 열정’, 토론토 부흥의 ‘압도적인 기쁨’, 브라운스빌 부흥의 ‘잃어버린 자들을 위한 열심’, 캔자스시티 각성에서의 ‘치유의 은사’, 아주사 거리 부흥에서의 ‘방언의 나타남’ 등등...

이런 면에서 이번 애즈베리 부흥은 ‘팬데믹으로 지친 젊은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와 세대를 위한 특정한 방식으로 나타나시는 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번 애즈베리 부흥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