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지리산...산책] 지리산 호랑이를 추억함
호랑이 해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지리와 백두, 시베리아 평원을 달렸던 그들의 우렁찬 포효가 사라졌다. 행동반경이 400㎞~1,000㎞인 우리 호랑이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바람같이 달렸다. 지금, 존재하더라도 반도의 허리가 잘리고 철책이 둘러쳐진 비운의 강토는 그들의 숨통을 조였을 것이다. 아직 지리산 곳곳 마을에는 호랑이 이야기가 전해진다. 직접 겪은 100수 어르신의 목격담과 돌아가신 마을 사람들의 무용담. 밤이 이슥해지면 컹컹대던 개들이 일시에 소리를 멈추면 동네 뒷산에 호랭이 지나가는 때. 공력 높은 노스님이 출타했다 돌아갈 때 언덕배기에서 등 밀어준 호랑이. 전래동화에 나오는 은혜 갚은 호랑이.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 이야기. 친근했던 그들 한반도에서 절멸됐다.
영화 ‘대호’에서 묘사된 것 같이 지리산 호랑이는 일제를 거치면서 거의 멸절에 이른다. 조선의 국가 이념은 인간 본위의 정책이다. 인구는 증가하고 더 많은 토지가 필요했다. 습지를 개간하고, 화전으로 산을 일궜다. 서식처가 파괴된 호랑이와 인간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호환이 생겼다. 조선왕조 내내 ‘범포획작업’이 이뤄졌다. 호랑이 개체 수는 급격하게 줄었다. 더하여 조선 총독부의 ‘해수구제책’(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끼치는 해수(害獸)를 없앤다)은 조선의 야생동물에게 치명타였다. 잡힌 호랑이 가죽은 전승물이 되었다. 지리산 호랑이를 사살하고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박제된 호랑이는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참화로 한반도의 산하가 초토화됐다. 그런 시간을 겪으며 우리 호랑이는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다.
단군설화에 등장하여 곰과 인간되길 겨룬 호랑이. 민화에 우스꽝스럽게 등장하는 담배 피는 해학적인 호랑이.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등장하여 인간의 위선을 꾸짖는 범. 88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인 호돌이. 그들의 멸절에 대해 대답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