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위한 약탈적 물적분할…"모회사 주주 권리 외면"
기업분할은 하나의 회사를 둘 이상의 회사로 분리하는 것으로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 있다.
인적분할은 신설되는 자회사의 주식을 분할 전 모회사의 주주들이 소유한 지분 비율대로 갖는다. 지분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물적분할은 모회사의 주주들에게 자회사의 주식이 주어지지 않는다. 모두 모회사가 갖는다. 한마디로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의 가장 큰 차이는 자회사의 주식을 누가 갖느냐 여부.
물적분할을 하면 모회사는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다. 더구나 자회사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신규 사업자금도 조달할 수 있다. 꿩먹고 알먹는 셈이다.
모회사는 자회사의 상장 후에도 기업가치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변한다. 모회사의 주식가격이 건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갖게 되면 분할 전 지분 1%를 가진 주주는 분할 후에도 모회사를 통해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 1%를 갖게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논리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시키면 기존 모회사 소액주주들의 주식가치가 희석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자회사가 상장을 하면 투자자들은 자회사에 직접 투자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회사 주식을 계속 들고 있을 유인이 사라지게 된다.
이로 인해 물적분할 후 자회사의 상장은 소액주주들의 부(富)가 지배주주에게 이전되는 효과를 낳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에서 지배주주는 더 높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지만 소액주주들의 주식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적분할 후 상장은 흔히 ‘쪼개기 상장’으로 불린다.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주주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 즉 주주의 권리 훼손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 이중 상장이 아무렇지 않게 용인되고 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규모 기업집단의 물적분할이 잇따르면서 모회사는 물론 자회사의 주가도 동시에 타격을 입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물적분할로 역대급 공모주 시장이 열렸고, 기업은 성장 기회를 잡았지만 이들 주식을 들고 있는 소액주주들은 울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증시에서는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인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SK이노베이션의 SK온 물적분할이 모회사 소액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이들뿐 아니라 지난달 27일에는 NHN이 클라우드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해 상장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하루에 주가가 9.87% 폭락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공매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물적분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위원은 지난 3일 지난해 한국 증시의 부진은 지배주주(경영자)와 소액주주간 붕괴된 신뢰 관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표적 요인의 하나로 물적분할 후 이중 상장을 꼽았다. 선진 자본시장의 물적분할은 구조조정의 목적이 크지만 우리나라는 오로지 기업공개를 통한 신규 사업자금 조달에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물적분할 피해 방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매수청구권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기업의 이사회가 인수합병(M&A), 기업분할, 영업양수도 같은 중요한 내용을 추진할 때 이에 반대하는 소액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적정가격으로 기업에 되팔 수 있는 권리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소액주주들이 자회사의 주식을 먼저 살 기회를 주는 우선배정권, 자회사 주식을 우선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도 거론되고 있다. 우선배정권과 신주인수권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우선배정권은 청약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되지만 신주인수권은 청약하지 않더라도 권리는 살아있다. 누군가에게 팔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신주인수권,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식매수청구권과 우선배정권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조만간 물적분할 및 이중 상장에 따른 소액주주 보호 방안을 마련해 공개 제안할 예정인데, 골자는 모회사 소액주주에 우선배정권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