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은 부흥하는데...민주주의 시민교육은 왜 무심할까
개원 20년 맞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내달 초에 누적 수련원생 100만 돌파 앞둬
개원 20년을 맞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누적 수련생 1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김병일 이사장에 따르면, 코로나 재확산으로 활동이 연기돼, 내년 1월 5~6일경 달성될 전망이다. "도산서원 같은 인성교육 기관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선비정신 교육을 통한 인성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는 김 이사장은 환경 변화에서 사람의 중요성, 인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통문화의 복원은 ‘정체성 위기’가 올 때 가장 유효하고 의미 있는 방안으로 인식된다. 다만, 중세의 ‘선비정신’을 21세기 ‘시민정신’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 역시 동반돼야 할 것이다. ‘선비정신’의 부흥을 보며 우리사회 현실에 한가지 의문이 생기는 이유다. 왜 자유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이를 실현하는 시민교육엔 이토록 무심한가. 인간에게 정체성이란 궁극적으로 ‘생명’ 같은 것이라고 한다. 위대한 문명일수록 그렇다.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한국인의 새로운 바람직한 정체성이 구축돼야 할 때다. 이를 ‘단군 자손’ ‘단일민족’에서 찾을 시대는 아니다. 북한 김씨왕조의 백성으로 재편하려는 구상 또한 시대착오적이며 반(反)문명적이다. 현재 한국인에게 시급한 것은 자유민주공화국의 이념과 그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자유민주공화국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이었는지 배워야 한다.
한편, 2001년 설립된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퇴계 이황선생(1501~1570)을 모신 도산서원 부설기관이다. 1574년 세워져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명맥을 이어간 서원 중 하나다(사적 제170호).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 16대 이근필 종손(90)의 주창 으로 민간에 의해 설립됐다. 2002년 수련 첫 해 수련생 224명이 거쳐간 이래 해마다 늘어 5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2008년 프로그램을 재정비, 정부 지원까지 더해져 설립 10년 시점엔 수련생이 약 100배 늘었다. 인성교육을 고민하는 시대상과 맞물려, 2015년 7월 인성교육진흥법 시행으로 전국 초·중·고교의 수요가 폭증했다.
퇴계 이황의 학문은 유교 철학의 극치로 평가된다. 최초의 통일제국 한나라의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공자 사상’이 송나라 들어 (관념론적)철학으로 발전했다. 송나라는 북방·서북의 강력한 이민족 위협에 시달리던 문약한 왕조였고, 수백년 전 서역에서 들어 온 불교가 깊이 뿌리내린 상태였다. 그래서 주자학의 등장을 중화문명의 ‘정체성 구축’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간 게 퇴계였다.
전 세계 관련 연구자들로 구성된 ‘퇴계 학회’는 상징적이다. 사상·철학으로서의 유학이 중국문화만으로 수렴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에 전해져 훗날 근대일본의 체제이념 구성에 영향을 줬다는 연구가 있을 만큼, 퇴계의 의미는 특별하다. 다만, 오늘날 더 시급한 게 자유민주공화국의 ‘시민정신’이다. ‘선비정신’ ‘시민정신’ 양자가 접목될 여지도 기대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