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젊은 철학자 ‘한국철학사 총설’ 자국어로 번역

2021-12-27     임명신 기자
다오 부부 베트남사회과학한림원철학원 연구원. 자신이 번역한 현암 이을호의 ‘한국철학사 총설’. /중앙일보

베트남의 젊은 철학자가 최근 현암 이을호(1910~1998) 선생의 『한국철학사 총설』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눈길을 끈다. 베트남 사회과학한림원철학원의 다오 부부 박사(38) 얘기다. 현암 선생은 다산 경학 연구의 개척자이자 사상의학을 재정립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국립광주박물관장 등을 역임,『다산학의 이해』 『다산학 입문』을 남겼다. 다산 정약용 연구를 개척한 뒤, 자신의 ‘한사상’을 정립해 후대 한국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오 박사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한류 인기가 고조되면서 한국·베트남 양국 전통 사상의 유사성에 대한 주목도까지 높아지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성공이 낳은 관심이다. "현암의 책은 근대 이후 한국철학의 독창성과 철학사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베트남의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를 특히 매료시켰던 게 사상의학과 신종교 연구였다. "한국에선 현암이 다산학 정립으로 유명하지만,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한국적 유교철학의 발전으로 해석한 것, 동학·대종교·원불교 등 근대 한국에 나타난 신종교에 대한 연구가 흥미로웠다"고 다오 박사는 말했다.

베트남에서 대학시절 동방학을 전공한 그가 한국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양국 역사의 유사성이다. 중국의 주변 국가로서 유교와 한자를 받아들이고 중앙집권 국가를 세웠으며, 각각 일본과 프랑스에게 국권을 빼앗긴 점 등이다. ‘한국 근대기의 인본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이 근대 이후에도 현암 같은 학자들의 주체적인 유학 해석으로 독자적 철학을 발전시킨 것처럼 베트남 역시 비슷한 학자들이 많이 나왔다"며 "근대 들어 많은 신종교가 등장한 것도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오 박사는 그러나 "베트남 유학이 조금 더 실용적 분위기가 있다"며 "한국처럼 명분이나 도덕보다 사회에 실질적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연구가 됐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다소 힘들었던 개념이 하늘(天)이다. 베트남 유학엔 ‘천명’ ‘천벌’ 같은 개념이 없다. 그보다 가족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베트남의 국민영웅 호치민이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애독한 것은 사실이나, 프랑스·소련·홍콩 등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독서를 한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향후 10년간 현암 이을호 선집 27권 중 11권이 다오 박사에 의해 번역될 예정이다. "K팝처럼 한국철학 역시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학문이 됐으면 좋겠다." 힌국철학을 "매우 매력적인 세계"라고 표현하는 다오 박사가 말했다. 21세기에도 ‘명분론’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무겁게 받아들일 발언이다.

 

한국인들의 베트남 인식도 성숙해야 한다. 베트남에 대한 ‘우월의식’과 함께 ‘부채의식’도 그들에겐 불쾌한 태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긴 말 대신 한 네티즌의 댓글 일부를 소개한다. "베트남이 한국에 뒤쳐진 것은 근래, 그것도 경제분야밖에 없다. 사상·문화 자체가 한국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현재 공산국가라 사상 통제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는 국가이며 비생산적 명분따윈 2순위다. 베트남전쟁 참전국인 한국과 미국을 용서할 만큼 배포가 크다. 실익 없이 명분만 따지는 한국인들과 차원이 다르다."